요즘 서양점성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는데...서양점성술에 대한 이렇다할 설명이 부족하여
일본판 위키피디아 의 서양점성술 (Wikipedia-西洋占星術) 글을 정리해서 연재하려 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지만 가볍게 읽어 주시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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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점성술은, 서양에서 발달해 온 점성술의 체계이다. 헬레니즘 시대에 성립한 체계가
기반이 되어 있으며 일반적으로는 호로스코프를 이용한다. 점치는 대상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여겨지는 천체가, 개인이 출생할 때의 정확한 시간에 어느 위치에 있을까를 점성술 챠트에
그려내, 점성술 챠트를 해석하는 형태로 점친다.
근대가 되어 일반적으로 퍼진 선·싸인(Sun Sign) 점성술에서는, 태양이 있는 싸인을 기준으로
해서 점을 친다. 패션잡지등에서 잘 보이는 12 별자리를 기본으로 한 별자리 운세는, 이것을
이용한 것이다.
점성술 전반이 그렇듯이, 서양 점성술도, 근대적인 과학의 발전에 있어서「과학」으로서의
지위는 인정받지 못하고 무시를 받고 있으며 과학사등에서는 유사 과학으로 분류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황도 12궁과 인체의 상응도)
역사----------
기원
서양점성술의 기원은 바빌로니아에 있다. 바빌로니아는 기원전 2천년에 하늘의 별들과 신들을
연결하는 일을 하여 하늘의 상징이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미리 보여준다고 생각을 했다.
Enuma anu enlil, (기원전 1000년)은 이러한 징조를 모은 것이다.
다만, 당시 징조와 연결시킬 수 있고 있던 사건은, 오로지 군주나 국가에 관련되는 사건만으로,
그 독해도 별의 위치를 그려 점치는 것이 아니고, 별에 담긴 상징적인 의미(화성은 군신
네르갈에 대응하고 있었기 때문에 불길한 징조로 하는 등)를 읽어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현대에 이어져 있는 별의 위치를 그리는 점성술은, 천문학이 발달해, 혹성의 운행에 관한 지식을
축적하며 기원 전 1 천년 이후가 되서야 성행했다 (요즘을 비롯하여 예전부터, 천문학과 점성술의 경계가 애매한 시대는 오랫도록 이어져왔다).
원래는 달력을 위해서 정비된 황도 12궁을 점성술과 연결시키는 일도, 그 당시에 행해졌다.
현존 최고의 별자리지도는, 설형문자의 기록에 남는 기원 전 410년의 출생챠트 (귀족의 아이
별자리를 그린 것)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는, 후의 점성술에서 보여지는 제반 개념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던듯하다.
이집트 점성술----------------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저술가들은, 점성술을 자주 칼데아인과 이집트인이 가져온 것으로서
서술하고 있다.
확실히, 기원 전 4200년의 별자리지도를 동반하는 이집트의 점성술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이집트인의 점성술은, 태양과 시리우스의 편성이 주역이 되어 있다. 그것이, 이집트에
비옥함과 활력을 가져와 주는 나일강의 범람을 예언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서양 점성술에 직접 관련되는 개념의 발달에는, 이집트 점성술은 거의 기여하고 있지
않다. 「이집트 기원」이 일찌기 알려진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정복 이후, 헬레니즘 문화권에
편입되어지고 있던 이집트(특히 알렉산드리아)에서, 점성술이 발달한 것에 대해 생긴 와전으로,
정확하게는 헬레니즘 시대에 있어서의 기여로 자리 매김되어야 하는 것인듯하다.
그리스인의 점성술-------------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점령된 후, 이집트는 그리스의 지배하에 있었다. 그리고,
헬레니즘 문화가 돋보이는 가운데, 처음으로 본격적 점성술을 이용하는 점성술이 나타났다.
출생시에 있어서의 별들의 위치로부터 개인 챠트를 분석 하는 시도가 보급된 것은,
서양 점성술에 있어서 그리스인들의 최대의 공헌이다. 이 시스템은「별자리 점성술」
( 즉 호로스코프 점성술 ) 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 아센단트(후술)는 희랍어로「호로스코포스」
라고도 불리고 있었기 때문에서이다 (점성술챠트 그 자체를「호로스코프」라고 부르게 된 것은,
이것이 어원이다). 그리스에서 많이 발전했다고는 해도, 그 대부분은 바빌로니아로 부터도
이어져온 것이었다.
점성술의 보급은, 춘분점세차(春分点歳差)의 발견자로 여겨지는 Hipparchus(기원 전 2 세기)
이후의 일이다. 일찌기 그는 점성술을 낳은 인물과 같이 자리 매김되었지만, 실제로는
바빌로니아로부터 천문학과 병행하여 발달한 점성술의 지식을, 헬레니즘 세계에 가져온
인물이었다. 그 바빌로니아로부터 이어진 시스템은, 바빌로니아 이후 꾸준히 발전되어 온
것은 아니지만, 그리스 점성술사들에 의해서, 개인의 점성술 챠트를 판단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자료로 매김되었다.
그리스가 로마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간 후로는, 오로지 그리스 사람들에 의해서 점성술은
발달을 이루었다. 로마에서도 마르크스·마닐리우스의「아스트로노미카」(서기 1 세기)등이
나타났지만, 서양의 호로스코프 점성술의 발전에 있어서 특히 중요했던 것은,
천문학자·점성술사 Klaudios Ptolemaios (프톨레마이오스)의 공헌이다. 천문학과 점성술이
나누어지지 않았던 시대에 있고, 그의 천문학서「알마게스트」와 함께,
점성술서「테트라비블로스」(네 개의 책)은, 그 후의 서양 점성술의 전통에 있어서의
기본서가 되었다. 「테트라비블로스」에서는 1권에서는 혹성의 냉(冷) / 열(熱) / 조(燥) / 습(濕)
등의 일반적 원리를 설명했고 2권에서는 사회 변화를 점치는 점성술 기법이, 3권과 4권에서는
개인의 운명을 점성술로 판별하는 기술을 전하고 있다.
(그리스의 프톨레마이오스)
그리스인(특히 프트레마이오스)에 의해서, 혹성(태양과 달도 포함), 하우스, 12궁 등이
합리화되었고 이들의 특징과 기능도 정리되었다(오늘날은 약간의 수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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